
극적인 바닥은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까다로운 부분입니다.
음주운전 적발도, 응급실 신세도, 주변의 개입도 없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이건 멈춰야 해"라고 생각한 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 완만한 미끄러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흐름이 그토록 오래 멀쩡히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돈을 잘 벌고 있었습니다. 자주 밖에서 놀았습니다. 몇 잔 걸치고 나면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을 샀습니다. 주변에 있는 누구와든 즉흥적으로 여행을 잡았습니다. 통이 크고 즐거워 보인다는 이유로 술값을 대신 내곤 했습니다. "난 이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요? 모든 게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전체를 보기 전까지는요.
"난 이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어"의 함정
작동 방식은 이렇습니다. 직장에서 긴 시간을 일합니다. 스트레스와 마감, 까다로운 사람들을 상대합니다. 금요일쯤 되면 스트레스를 풀 자격을 얻었다고 느껴집니다. 몇 잔, 근사한 저녁, 그리고 자정에 하는 온라인 쇼핑까지. 안 될 게 뭐 있나요. 돈도 벌고 있고, 어엿한 어른이고, 즐길 자격이 있으니까요.
문제는 "난 이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어"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가 고됐다는 이유로 화요일 밤 맥주에 적용됩니다. 무제한 미모사가 나오는 주말 브런치에도 적용됩니다. 넉 잔쯤 마신 뒤 새벽 1시에 기막힌 아이디어처럼 보였던 충동적인 주문에도 적용됩니다. "인생은 짧으니까"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떠나는 즉흥 비행기 표에도 적용됩니다.
지출 하나하나가 정당해 보였습니다. 밤 외출 한 번 한 번이 마땅히 누릴 보상 같았습니다. 충동구매 하나하나가 사소해 보였습니다. 그 어느 것도 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모든 게 어그러지는 결정적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한 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개의 작은 순간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출
취중 소비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는 무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즐겁고, 통이 크고, 즉흥적으로 느껴집니다. 저축을 도박으로 날리거나 할부로 보트를 사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이런 것들입니다.
-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술집에서 한 차례씩 술값을 내는 일
- 취한 나는 늘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자정에 배달 음식을 시키는 일
- 몇 잔 마신 뒤 기막힌 아이디어처럼 보여 온라인에서 본 물건을 사는 일
- 술이 모든 걸 근사하게 들리게 만들어서, 사실 감당하기 힘든 여행과 계획에 그러자고 답하는 일
-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더 좋은 호텔, 더 좋은 좌석, VIP 옵션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
- 책임감 있게 마시는 음주도 결코 싸지 않기에, 어디든 택시를 타고 다니는 일
이 중 어느 것도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사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은 보상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벌이가 괜찮으니 통장이 그 비용을 흡수해 버립니다. 월세를 낼 돈은 늘 있습니다. 계속 이어갈 돈도 늘 있습니다. 수표가 부도나는 일도, 청구서를 거르는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쌓아 올리지 못합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는 테스트
결국 저를 일깨운 건 이것이었습니다. 위기도, 주변의 개입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순하고 가혹한 질문 하나였습니다.
2년 전의 나는 어디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2년간의 탄탄한 수입. 매달 통장에 꽂히는 2년간의 괜찮은 월급. 그런데 그 결과로 내게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저축도 없었습니다. 투자도 없었습니다. 비상금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운 그 어떤 재정 목표에서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남은 건 그저 술집 영수증 더미, 절반쯤만 기억나는 밤들, 필요도 없던 잡동사니, 그리고 대부분 취해 있던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뿐이었습니다.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벌지 못해서가 아니라, 번 모든 돈이 술을 중심으로 짜인 생활 방식에 조용히 먹혀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한 순간을 짚어 보려 했습니다. 짚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잘못됐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요. 어떤 밤에도, 어떤 지출에도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봤을 때에야 비로소 그 패턴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2년. 괜찮은 수입. 그런데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음. 그건 바닥을 친 게 아닙니다. 천천히 새어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게 더 나쁩니다. 특정한 결정 하나에 화를 낼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결정을 한꺼번에 두고서만 화를 낼 수 있을 뿐입니다.
왜 한 번도 잘못됐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술은 당신을 지금 이 순간에 붙잡아 두는 데 탁월합니다. 그것도 마음챙김이나 선(禪) 같은 방식이 아닙니다. 술은 당신을 바로 지금에만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 술잔, 이 밤, 이 기분에요. 술은 당신의 시간 지평을 코앞의 순간으로 좁혀 버립니다.
석 잔쯤 들어간 상태에서 "노후를 위해 저축해야 해"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건 한 잔 더 하면 좋겠다는 것, 온라인에 있는 저 재킷이 완벽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 동료들과 떠나는 이 즉흥적인 라스베이거스 여행이 전설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강화 효과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마시는 친구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씁니다. 밖에서 노는 건 그저 사람들이 다 하는 일입니다. 밤 외출에 돈을 쓰는 건 그저 삶의 일부입니다. 그 무리 안의 누구도 당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야, 너 이번 주말에 의미 있는 것도 아닌 데 800달러 썼어"라고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고기능 음주자라서, 청구서가 제때 결제되고 일도 제대로 해내고 있어서, 외부에서 울리는 경보가 없습니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개입에 나서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계속 돌아갑니다. 다만 아무것도 쌓아 올리지 못할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리 효과
계산을 해 보면 진짜로 쓰라린 부분이 여기 있습니다. 그건 단지 내가 쓴 돈만이 아닙니다. 그 돈이 될 수 있었던 무언가까지입니다.
만약 그 2년간 취중 소비의 절반만이라도 인덱스 펀드에 넣었더라면, 제겐 진짜 완충 장치가 생겼을 것입니다. 안전망이요. 선택지요. 그 대신 제게 남은 건 자정에 사들인 물건으로 가득 찬 옷장과, 절반쯤만 기억나는 밤들의 사진으로 가득 찬 휴대폰이었습니다.
금주와 함께 찾아오는 재정적 자유는 단지 술값으로 썼을 돈을 아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술이 만들어 내는 지출 패턴 전체를 끊어내는 일입니다. 취중 구매, 숙취를 달래려는 위로성 소비, 술이 매 순간 부추기는 "나에게 선물하기" 사이클까지요.
술은 단지 술값만큼만 제게서 비용을 앗아간 게 아니었습니다. 술과 함께 따라온 모든 것, 그리고 그 대신 제가 쌓아 올릴 수 있었던 모든 것까지 앗아갔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나
제 경우, 그건 극적인 다짐이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한 발 물러서서 본 그 순간이었습니다. 2년간의 괜찮은 수입을 들여다보고, 제가 시작했을 때와 본질적으로 똑같은 재정 상태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나빴습니다. 모아 둔 것 하나 없이 두 살을 더 먹었으니까요.
결심을 하기 위해 바닥을 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벌어들인 것과 내게 남은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면 됐습니다. 그 간극에는 단 하나의 설명만 있었고, 그건 불운이나 높은 생활비가 아니었습니다. 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술 주위를 맴돌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술을 끊은 첫 몇 달 동안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몸이나 마음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통장 잔고가 실제로 불어나는 걸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돈이 그냥... 거기 남아 있었습니다. 매 주말마다 술, 취중 음식, 충동구매, 그리고 금요일 밤 11시에 근사하게 들렸던 즉흥 계획에 돈을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익숙하게 들린다면
당신의 음주가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해합니다. 제 음주도 그랬으니까요. 몇 년 동안이나요.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보는 테스트를 한번 해 보세요. 2년 전 당신의 재정 상태가 어땠는지 보세요. 그 후로 얼마를 벌었는지 보세요. 지금 당신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 보세요.
그 숫자들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월세와 식비와 평범한 생활비로는 설명되지 않는 간극이 있다면, 당신도 제가 겪었던 것과 같은 완만한 미끄러짐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극적인 추락이 아닙니다. 바닥을 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그 안에 있을 때는 알아채기 쉽지 않은, 조용하고 꾸준한 새어 나감입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 위해 모든 걸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모든 기회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쌓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제겐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재정적 새어 나감은 하룻밤 사이에 당신을 망가뜨리는 종류가 아닙니다. 당신이 결코 알아채지 못할 만큼만 딱 가져가는 종류입니다. 해마다, 해마다, 고개를 들어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의아해할 때까지요.
바닥을 친 적도 없습니다. 극적인 각성의 순간도 없었습니다. 그저 숫자를 조용히 들여다본 것, 그리고 그 숫자가 들려준 불편한 진실뿐이었습니다.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